* 대전시 나들이/대전 출사지

백일홍이 피여있는 송시열의 남간정사

좋은생각, 2015. 7. 31. 20:40

 

 

 

 

 

▷ 일시 : 2015년 7월 26일 (일요일)

 

 ▷ 남간정사 개요

ㅡ 대전 동구 가양동에 있는 남간정사(南澗精舍)는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1607∼1689)이

1683년, 나이 77세에 지은 별서(別墅)정원

ㅡ 송시열이 후학을 가르치고 학문을 완성 했다는

ㅡ 1991년부터 1997년까지 장판각과 전시관, 서원 등 16동의 건물을 복원해 우암사적공원으로 조성됨

 

 

 

 

 

 

대전에서 사계절 사진 찍기 좋은 명소인 남간정사

특히 봄에 무척 아름답지요

이렇게 연못이 있는데 봄엔 벚꽃이 만개해서 반영과 함께 아름다움을 전해주고

며칠 지나면 하얗게 벚꽃이 연못에 떨어져 운치를 더해주는 곳이랍니다

그럼 여름엔...

 

 

 

 

 

 

여름꽃인 백일홍이 남간정사를 지켜주고 있답니다

백일홍은 배롱나무로 주로 불리고 7월부터 꽃이 피기 시작하여

100일을 피고 지고를 반복하지요

 

 

 

 

 

 

남간정사 오른쪽에는 일제시대에 소제동에서 옮겨 지은 

건축미가 뛰어난 기국정이 자리하고 있고요

 

 

 

 

 

 

연못 가운데엔 나무 한 그루가 우리네 정서를 대변하듯...

 

 

 

 

 

 

기국정의 옆모

 

 

 

 

 

 

연못에 떨어진 백일홍의 붉은 꽃잎들이 처연하단 생각이 듭니다

 

 

 

 

 

 

선비의 고고하고 청렴한 기상을 보인다고해서

서당이나 서원, 그리고 선비의 묘지에 많이 심었다는 백일홍

백일홍의 꽃말은 '인연'이라고 합니다

 

 

 

 

 

반영도 아름다움을 더해주네요

 

 

 

 

 

 

사진을 반대로 돌려보고...

 

 

 

 

 

 

우암 송시열이 말년에 제자를 가르치던 남간정사

 

 

 

 

 

 

 

 

 

 

 

 

 

현대적인 느낌

 

 

 

 

 

 

 

 

 

 

 

 

 

배롱나무(백일홍)와 기국정의 문살

 

 

 

 

 

 

 

 

 

 

 

 

 

송시열

 

송시열은 주자학의 대가로서 이율곡(李栗谷)의 학풍을 계승한 노론의 영수이자 조선 인조에서 숙종 대까지의 문신이며 성리학자이다.

본관은 은진, 호는 우암(尤庵)으로 충청도 옥천에서 출생하여 김장생(金長生)과 김집(金集) 문하에서 학문을 배웠다.

27세 되던 인조 11년(1633) 과거에서 장원급제하여 관직에 나아갔고, 2년 뒤인 1635년 세자의 교육을 담당하는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에 들어갔는데 이때 봉림대군(鳳林大君)의 스승이 되었다.

이를 계기로 훗날 효종으로 등극하는 봉림대군과 특별한 교분을 쌓아 절대적인 신임을 얻는다.

특히 효종의 북벌정책을 지지하며 사림(士林)을 대표하는 중심인물로서 막대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그러나 현종 1년(1659) 별세한 효종의 장례를 몇 년 상으로 치룰 것인가라는 문제를 가지고 당쟁이 격화되었으며,

숙종 1년(1674)까지 계속된 끝에 그가 속한 서인들이 패하면서 유배를 가는 등 정치적으로 곤란을 받았다.

숙종 15년(1689) 기사환국으로 서인이 축출되고 남인이 재집권하자 제주도로 유배되었고, 같은 해 6월 서울로 압송되어 오던 중

전라도 정읍에서 사사(賜死 : 왕명으로 내린 독약을 먹고 죽음)되었다.

숙종 20년(1694) 억울한 죽음이 무죄로 인정되어 관작이 회복되고 문정(文正)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정조(正祖) 대에 이르러 중국의 주희(朱熹)와 더불어 나란히 현자(賢者)로 일컬어지고,

'대로(大老)'라는 극존칭을 얻은 유일한 인물로 존경을 받았다.

 

송시열의 성격은 직설적이고 솔직담백하여 뒤에서 남의 흉보는 것을 불쾌하게 여겼다.

특히 최고의 스승으로 여긴 주자(朱子)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언동에 대해서는 누구라도 단호히 비판하여 정적을 많이 만들었다.

이쯤 되면 일반인들에게 무척 두려운 존재였을 텐데 자신을 찾아오거나 학문을 배우려는 이에게는 누구나 깎듯이 열린 자세로,

편견없이 대하였다. 여성에게도 교육이 필요하다는 인식 아래 자신의 며느리와 딸에게 당시 천대받았던 언문(言文, 한글)으로 된

간찰과 서책을 보내 읽도록 하였고, 한자를 모르는 아녀자를 위해 『사서삼경』과 『주자가례』를 언문으로 번역하여 집필하였다는 일화도 있다.

 

대전이 낳은 위대한 인물이기도 한 우암 송시열
16대 인조부터 17대 효종, 18대 현종, 19대 숙종 등 4임금을 섬긴 우암은 조선왕조실록에 한 사람의 이름이 3000번 이상

나오는 것은 오직 그 뿐이고, 전국 42개 서원에서 그를 배향하고 있다는 사실 등으로 그의 존재를 평가할 수 있다 (펌)

 

 

 

 

 

 

자연적으로 생긴 지반에 돌을 깔아 다져서 자연적인 기단을 만들었고

그 울퉁불퉁한 바위 위에 집을 지었다는 남간정사

 

 

 

 

 

 

 

 

 

 

 

 

 

 

 

 

 

 

 

 

대전시내의 많은 분들이 운동 겸 산책하러 오시지요

계족산 산행도 이곳에서 부터 시작하기도 합니

 

 

 

 

 

 

붉고 둥근 나무기둥 두 개로 세운 홍살문
지붕이 없이 화살모양의 나무를 나란히 세워 놓았고, 그 중간에는 태극 문양이 그려져 있지요

경의(敬意)를 표하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고 합니다

 

 

 

 

 

 

KBS드라마 촬영을 하기 위해 오신 연기자분들

 

 

 

 

 

 

연못이 바라보이며 후학들에게 덕을 베풀고 교육하던 덕포루

 

 

 

 

 

 

덕포루에 오르면 시원한 바람과 조망이 좋지요

 

 

 

 

 

 

우암사적공원은 우암 송시열의 진품영정과 글, 옷가지 등 유품들을 볼 수 있는  유물관과

매화, 연꽃, 벚꽃 등이 고택과 어우러져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공원입니다

 

 

 

 

 

 

 

 

 

 

 

 

 

올봄에 남간정사를 정밀 고증을 통해서 보수한 뒤 시민에게 개방하였지요

남간정사 입장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입니다

우암사적공원은 연중무휴로 개방되고요

 

 

 

 

 

 

내년 벚꽃피는 봄을 기다리는 저의 마음을 보여주는 사진 

 

 

 

사진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남간정사를 많이 찾지요

그렇지만 아직도 대전시 유형문화재이지만 모르시는 분들이 많을 거란 생각이 들기에

대전시에서 더 많은 관심과 홍보가 있었으면 좋겠고

저도 조금이나마 홍보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을 가지면서 남간정사 포스팅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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