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경 사진/여행. 자유로이...

해미읍성은 평화롭다

좋은생각, 2013. 5. 12. 01:11

 

 

 

 

 

 

▷ 일시 : 2013년 5월8일 (수요일) 개심사 ㅡ 해미읍성

 

▷ 개요 : 1. 서산 해미읍성은 고려 말부터 극성을 부렸던 왜구를 막기 위해 조선 태종 때 쌓은 석성

2. 낙안읍성 고창읍성과 함께 현재 남아있는 조선시대 대표 읍성 (사적 116호)

3. 천주교 박해성지로도 유명한 해미읍성

 

 

 

 

 

 

 

개심사에서 왕벚꽃을 찍고 시간이 남아 해미읍성으로 가면서 목장과 저수지를 바라보네요

상쾌한 아침 바람과 상큼한 풀잎 향기들이 저의 몸을 붕~ 뜨게 만들더군요

 

 

 

 

 

 

해미읍성의 정문인 진남문

아이들이 역사체험을 하기위해 많이 오더군요 

 

 

 

 

 

 

회화나무와 마을 관아

 

 

1801년(순조 1) 신유박해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맞이했을까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역사 속으로 떠나보자.

1839년(헌종 13) 풍양 조씨 세력은 천주교신자에게 “만약 처형장으로 가는 길에 있는

빨간 줄을 밟고 지나간다면 목숨만은 살려 주겠다”고 협박했다.

하지만 천주교신자들은 협박에도 불구하고 단 한사람도 빨간 줄을 밟고 지나가지 않았다.

천주교를 믿으면 하나뿐인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데도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처형장으로 발걸음을 뗐다.

이에 화가 난 풍양 조씨 세력은 회화나무 가지에 철사 줄을 걸고 천주교신자의 목을 메달아

문을 가했지만 매서운 고문에도 신자들은 고개조차 조아리지 않았다.

 
위 사진 회화나무를 보면 철사자국이 남아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조씨 세력은 많은 천주교신자를 한꺼번에 죽이기 위해 해미읍성 위에서 떨어뜨리는 잔인함까지 보였다.

1839년에 일어난 기해박해 사건은 표면적으로 천주교를 박해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실제로는

천주교에 관대한 안동 김씨 세력으로부터 권력을 탈취하기 위해 풍양 조씨 세력이 의도적으로 일으킨 것이다.

이 박해로 천주교인 100여명 이상이 목숨을 잃고 400여명 이상이 유배됐다.
단지 천주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100여명 이상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는 것이 마음이 아프다.
박해의 현장을 견학하면서 목숨을 잃은 천주교인들이 하늘에서 평안하기를 염원한다. (펌) 


 

 

 

 

 

 

관아에서 곤장으로 때리는 흉내를 내고 있네요

 

 

 

 

 

 

 

 

 

 

 

 

 

해미읍성 초가집의 고풍스런 모습과 유채꽃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저의 블로그에 오신 분들 모두 소망이 이루어 지시길... ^^

 

 

 

 

 

 

전통주막에선 소박한 민족고유의 먹을거리를 맛볼 수 있어 인기라 합니다

 

 

 

 

 

 

고창읍성 영산홍 아주 예쁘던데 해미읍성은 조금밖에 없더군요

 

 

 

 

 

 

 

 

 

 

 

 

 

 

 

 

 

 

 

 

해미읍성 지금은 비극의 흔적보다 아늑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의 역사유적이 많더군요

전 공원 같은 성 안을 산책하며 예스러운 정취를 즐기고 사진을 찍고 돌아 왔네요 

 

 

 

맘에 조금이라도 들었으면 손가락 눌러주시면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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