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전시 나들이/대전 출사지

송시열 혼이 담긴 남간정사

좋은생각, 2013. 4. 13. 02:57

 

 

 

 

 

 

▷ 일시 : 2013년 4월 7일 (일요일), 4월 8일 (월요일)

 

 

 

▷ 남간정사 : 1. 대전 동구 가양동에 있는 남간정사(南澗精舍)는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1607∼1689)이

1683년, 나이 77세에 지은 별서(別墅)정원

 

 

 

2.송시열이 후학을 가르치고 학문을 완성 했다는

 

 

 

3.1991년부터 1997년까지 장판각과 전시관, 서원 등 16동의 건물을 복원해 우암사적공원으로 조성됨

 


 

 

 

 

친구들과의 부부동반 경주여행

10명이 경주 벚꽃의 절정이라는 일요일(7일)을 고대하며 기다렸건만...

금요일 친한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네요 아버님이 멀리 가셨다고... 

일을 마치고 장례식장으로 가서 새벽 2시까지 있어주고

토요일 오전 수업만 진행하고 오후 3시부터 장례식장에 있으면서 아는 분들 접대하고...

 

경주 갈려고 했던 친구들도 저녁 되어서 다들 모여 밤새도록 고스톱과 포커로 꼬박 밤을 샜네요

전 장지를 9시에 간다고 하기에 장례식장 옆의 식장산 일출을 찍으러 가야겠다는 생각에

새벽에 길을 나섰는데 식장산 정상엔 눈이 와서 하얀데 먹구름만 가득하고...

어데를 갈까 하다가 남간정사가 생각이 나서 그곳으로 가면서 홍매화와 비에 젖은 벚꽃을 찍었네요

 

 

 

 

 

 

 

 

 

 

 

 

 

우암 송시열이 말년에 제자를 가르치던 남간정사가 눈에 들어오고... 

 

 

 

 

 

 

남간정사 오른쪽에는 일제시대에 소제동에서 옮겨 지은  건축미가 뛰어난 기국정이 있고요

 

 

 

 

 

 

목련도 환하게 피여있고...

 

 

 

 

 

 

새벽 비를 맞은 개나리가 얼마나 예쁘던지요

 

 

 

 

 

 

붉은 나무기둥으로 세운 홍살문

 

 

 

 

 

 

연못이 바라보이며 후학들에게 덕을 베풀고 교육하던 덕포루

 

 

 

 

 

 

덕포루를 바보는 목련

 

 

 

 

 

 

해가 살짝 보여주면서 대전 시내에 빛을 내려주네요 

 

 

 

 

 

 

 

 

 

 

 

 

 

 

 

 

 

 

 

 

담장 옆엔 벚꽃과 목련 그리고 매화가...

안으론 들어가지 못하게 문을 다 잠겨 놓았습니다

 

 

 

 

 

 

전시관

 

 

 

 

 

 

 

 

 

 

 

 

 

남간정사 들어가는 문

 

 

 

 

 

 

담 밖에서 의자를 놓고 올라가서 안을 찍어야 하는데 꽤 힘들더군요

남간정사를 찍으러 오실 땐 꼭 사다리나 의자를 가지고 와야 합니다 

 

 

 

 

 

 

 

 

 

 

 

 

 

남간정사는 봄에 가장 아름답다고 하더군요

 

 

 

 

 

 

 

 

 

 

 

 

 

 

 

 

 

 

 

 

많은 시간을 이곳에서 있을 수 없기에 조금 아쉬움을 남기고 다시 장례식장으로...

 

 

 

 

 

 

장지까지 가서 아버님을 잘 보내드리고 집으로 와서 씻고 잠을 자는데

핸드폰으로 전화가 오는 바람에 깨고...

밖을 보니 날이 너무나 좋고 구름도 좋아서 1시간 밖에 자질 못 했지만 혼자  꽃지해수욕장으로

일몰 찍으러 달려갔네요 140~150km로 씽하니...

아직까지 바뻐서 사진을 보지도 못 하고...

 

그 다음날 새벽 4시 30분에 전화벨이 울리네요

남간정사에서 사진을 찍으시던 분과 말씀을 나누었는데 새벽에 어느 성터를 가자고 하시길레

그러자고 했었는데 그 분에게서 전화가 오고...

새벽 5시에 만나서 성터를 가는데 가스가 많이 끼여서 오늘은 꽝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해장국을 먹고 그분과 다시 남간정사로 갔네요

 

 

 

 

 

자연적으로 생긴 지반에 돌을 깔아 다져서 자연적인 기단을 만들었고

그 울퉁불퉁한 바위 위에 집을 지었다는 남간정사

 

 

 

 

 

 

반영

 

 

 

 

 

 

남간정사 앞에는 잘 가꾸어진 넓은 연못이 있어 운치를 더하고 있네요

 

 

 

송시열

 

송시열은 주자학의 대가로서 이율곡(李栗谷)의 학풍을 계승한 노론의 영수이자 조선 인조에서 숙종 대까지의 문신이며 성리학자이다.

본관은 은진, 호는 우암(尤庵)으로 충청도 옥천에서 출생하여 김장생(金長生)과 김집(金集) 문하에서 학문을 배웠다.

27세 되던 인조 11년(1633) 과거에서 장원급제하여 관직에 나아갔고, 2년 뒤인 1635년 세자의 교육을 담당하는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에 들어갔는데 이때 봉림대군(鳳林大君)의 스승이 되었다.

이를 계기로 훗날 효종으로 등극하는 봉림대군과 특별한 교분을 쌓아 절대적인 신임을 얻는다.

특히 효종의 북벌정책을 지지하며 사림(士林)을 대표하는 중심인물로서 막대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그러나 현종 1년(1659) 별세한 효종의 장례를 몇 년 상으로 치룰 것인가라는 문제를 가지고 당쟁이 격화되었으며,

숙종 1년(1674)까지 계속된 끝에 그가 속한 서인들이 패하면서 유배를 가는 등 정치적으로 곤란을 받았다.

숙종 15년(1689) 기사환국으로 서인이 축출되고 남인이 재집권하자 제주도로 유배되었고, 같은 해 6월 서울로 압송되어 오던 중

전라도 정읍에서 사사(賜死 : 왕명으로 내린 독약을 먹고 죽음)되었다.

숙종 20년(1694) 억울한 죽음이 무죄로 인정되어 관작이 회복되고 문정(文正)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정조(正祖) 대에 이르러 중국의 주희(朱熹)와 더불어 나란히 현자(賢者)로 일컬어지고,

'대로(大老)'라는 극존칭을 얻은 유일한 인물로 존경을 받았다.

 

송시열의 성격은 직설적이고 솔직담백하여 뒤에서 남의 흉보는 것을 불쾌하게 여겼다.

특히 최고의 스승으로 여긴 주자(朱子)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언동에 대해서는 누구라도 단호히 비판하여 정적을 많이 만들었다.

이쯤 되면 일반인들에게 무척 두려운 존재였을 텐데 자신을 찾아오거나 학문을 배우려는 이에게는 누구나 깎듯이 열린 자세로,

편견없이 대하였다. 여성에게도 교육이 필요하다는 인식 아래 자신의 며느리와 딸에게 당시 천대받았던 언문(言文, 한글)으로 된

간찰과 서책을 보내 읽도록 하였고, 한자를 모르는 아녀자를 위해 『사서삼경』과 『주자가례』를 언문으로 번역하여 집필하였다는 일화도 있다.

 

 

 

대전이 낳은 위대한 인물이기도 한 우암 송시열
16대 인조부터 17대 효종, 18대 현종, 19대 숙종 등 4임금을 섬긴 우암은 조선왕조실록에 한 사람의 이름이 3000번 이상

나오는 것은 오직 그 뿐이고, 전국 42개 서원에서 그를 배향하고 있다는 사실 등으로 그의 존재를 평가할 수 있다 (펌)

 

 

 

 

 

 

건축미가 뛰어나다는 기국정

 

 

 

 

 

 

뒷편 언덕에는 후대에 지은 사당인 남간사가 있는데 선생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고 합니다

 

 

 

 

 

 

대전시내의 많은 분들이 운동겸 산책로로 오신다고 합니다

 

 

 

 

 

 

 

 

 

 

 

 

 

빨리 저 자물통이 열려지기를 바라면서 찍었네요

 

 

 

 

 

 

 

 

 

 

 

 

 

무학님이 찍으시는 유명한 매화는 아니지만 담장에서 예쁘게 피여있는 매화가 운치있더군요

 

 

 

 

 

 

 

 

 

 

 

 

 

새벽 공기와 아름다운 매화에 흠뻑 빠져도 보고...

 

 

 

사진을 좋아하다 보니 몇십년을 살았으나 잘 알지 못했던 제가 남간정사도 오게 되고

그리고 우암 송시열에 대하여 더 알게 되고...

많이 피곤했지만 많은 걸 얻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맘에 조금이라도 드셨으면 손가락 눌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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